[MUSIC 100] 우린 다르기엔 너무 같아요

in hive-102798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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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옆집 친구 엄마랑 친구 엄마 친구네 놀러 갔다. 그 집은 계곡 너머에 있는데 차 마시러 놀러 오라는 몇 번의 초대에도 가는 길이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져서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가 마침내 엉덩이를 움직였다. 계곡 아래까지 질러 내려갔다 올라오는 지름길을 친구가 가르쳐줬지만, 친구 엄마에겐 위험한 길이라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한참을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 길이,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그 길이, 셋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 보니, 금세 절반을 접고, 또 절반을 접고, 그리 멀지 않았다. 보이는 것보다 가까웠구나, 역시 앞으로 나아가 보지 않고는 거기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알 수 없어. 건너편으로 보이는 돌핀 호텔과 돌핀 호텔을 둘러싼 돌산, 매번 걷던 산책길이 처음 만난 풍경처럼 새로웠다.


저희 왔어요. 아주머니.
어여 와, 어여 와. 차 마실래?
네. 밀크티 주세요.
자, 여기 비스킷.
밀크티 정말 맛있어요.
그래. 더 마실래?
더 주세요.
너희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어요.
울레가 좋으니?
울레가 좋아요.
레는 싫으니?
레는 싫어요. 사람도, 차도 너무 많아요. 울레에서 행복해요.
그럼 한국 가지 말고 울레에서 살아.



창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창 마실래?
창이요? 조금만, 아주 조금만 마실게요.
으이구. 저 술쟁이들. 이제 술 안 마신다더니 결국 마시는구먼.
조금만 마실 거예요. 목이 마르니까요.
자, 짬빠랑 같이 마시렴.
아주머니랑 아저씨는 안 드세요?
아유. 우린 안 마셔.
아저씨는 드실 거죠?
그럼 그럼. 자. 건배.
와, 엄청 시원하다. 맛있어요.



두 잔 마시니까 볼이 뜨거워졌다.


취했구나. 얼굴이 빨개졌어.
아니에요.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그래요.
꽃 따줄게. 이리 와보렴.
이건 보리밭이에요?
그래. 보리밭. 여기 봐라. 얼마나 예쁘니? 꽃이 참 많지?
정말 예뻐요.
자, 이거 가져가서 병에 물 담아서 꽂아 두고 날마다 부처님께 기도하렴.
이게 뭐예요?
캄빠. 좋은 냄새가 나지?
네. 너무 향기로워요.



얼큰 취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계곡 물가에서 텐트를 치고 있는 여행자들을 만났다.


너희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야?
리키르에서 스쿠터 타고 왔어.
여기서 캠핑하려고? 밤에 무척 추울 텐데.
괜찮아. 우리 침낭도 있어. 자연 속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도 괜찮지.
이따가 돌핀 호텔로 저녁 먹으러 올래?
정말? 한국 음식이야?
응. 한국 음식 좋아해?
당연하지.
그럼 일곱 시쯤 밥 먹으러 건너와.



된장찌개 끓이고, 잡채 하고, 계란말이 말았다. 테라스에 다섯이 쪼르르 앉아 아직 이틀만큼 덜 찬 보름달을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순수한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이루어진 낯선 이들과의 대화가 오래도록 이어졌고.

어느덧 밤이 깊었다.

한참이나 인사를 나누고, 달빛 아래 친구들 텐트로 돌아가는 길 조금 바래다주고, 창밖에서 옆집 친구 엄마 불러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자려고 누워서 그 하루에 마주한 얼굴들, 이루어진 대화들, 오고 간 마음들을 떠올렸다. 보름달도. 별도. 사람들. 다르기엔 너무 같은 나의 사람들, 그들의 얼굴, 그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들과 기꺼이 더 먼 길을 돌아가고 싶어. 더 멀리 같이 가고 싶어. 가야 할 길은 더 멀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사랑으로.





우리 함께 서있어요 거친 바다가 땅을 지워
우린 먼길을 왔네요 그래요 알아요
우리가 택한 것과 택한 적 없었던 모든 것들로
우리가 우리가 된 걸요

그대 지친 몸을 내게 기대고서
또 내가 모르는 얘기를 들려줘요
오 우리 지난 눈물을 닦아 내고서
오래된 오해들을 전부 웃어버려요
밤이 오면 우리 서로의 노랠 배우고서
같이 불러요

우린 다르기엔 너무 같아요
바다는 너무 얕아요
우리를 갈라 놓기엔 가로막기엔

우린 아직 서로를 다 몰라요
가야 할 길은 더 멀어요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이제는 우리 다시 외롭지 말아요
서로의 곁을 지켜줘요

그대 지친 몸을 내게 기대고서
또 내가 모르는 얘기를 들려줘요
오 우리 지난 눈물을 닦아 내고서
오래된 오해들을 전부 웃어버려요
밤이 오면 우리 서로의 노랠 배우고서

우리 때론 기꺼이 더 먼 길을 돌아가요
더 멀리 같이 가요

우린 다르기엔 너무 같아요
바다는 너무 얕아요
우리를 갈라 놓기엔 가로막기엔

우린 아직 서로를 다 몰라요
가야 할 길은 더 멀어요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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