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핀 호텔의 텍스트는 구르지예프. 단어 하나 샛길로 흐르지 않게 쪽쪽 빨아먹는 중이다. 큰 배움을 얻고 있다. 나는 준비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내게 주어지는 어떠한 불편한 상황도 나의 존재를 헤칠 수 없다는 걸, 그 상황은 오히려 기계적 반응 대신 나의 의식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선물이라는 걸, 긍정과 부정의 마찰을 통해 존재력을 획득할 기회라는 걸 배운다.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감정과 눈물샘은 아직 어찌할 수가 없고, 다만 지켜보고, 해석하고, 나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물론 자주 실패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되새길 수 있으니 괜찮다.
옛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이라는 방식을 택했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고행에 대한 기계적 반응을 거스를 때 일어나는 마찰, 그 에너지가, 그 결정체가 의식 진화의 연료로 쓰이는 것이다. 인내심을 기르는 이유는 그게 훌륭한 덕목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화, 평화를 유지하는 힘, 건강한 정신을 획득하는 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그걸 얻었다고 해서 다 이룬 것이 아니다. 그걸 얻어야 마음을 수단으로 쓸 수 있게 된다. 전사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마음의 평화는 전장에 쓰일 무기다.
내가 사람들 속에 있기를,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늘 추구해 왔던 건 어쩌면 고행을 통해 존재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의지였을 것이다. 고독을 완성하는 이곳에서 새삼 그걸 깨닫는다. 동굴 속 은둔자가 아니라면 날마다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어야 하며, 타인이라는 지옥을 시도 때도 없이 들락날락해야 한다. 전원을 꺼버리지 않고 계속 게임을 해나가려면 난리 통인 매 순간을 선택으로 버텨내야 한다. 여기서 맞는 선택이란 오로지 내가 되기 위한 선택이다. 무엇이 내가 되기 위한 선택인지 알게 하는 것이 마음의 역할이다. 물론 상황이 흘러가게 두는 선택도 있다. 다만, 버텨내야 한다는 그 처절한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상황이 흘러갈 뿐, 나는 그와 함께 흐르지 않는다. 나는 버틴다. 나의 자리를 지킨다. 바위처럼 굳건해야 한다. 미처 굳건하지 않다면 유연해야 그나마 부러지지 않는다. 힘의 조절에는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맑고 향기로운 삶이 아니라 피 냄새와 비명으로 가득한 전장을 떠올려야 한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무기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주제에 운으로 살아남으며 누렸던 좋은 시절을 반성한다. 대충 살았던 어떤 하루, 태평하게 잠들어 있었던 나날들, 감옥 속에 있는 줄 모르고 감히 자유를 입에 올렸던 시절을 떠올리며 치열하게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