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맥도날드 할머니에 대한 얘기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일이 던가 궁금한 이야기 why 에 나와서 꽤 화제가 된 얘기였으니. 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찾아 본 적은 없다. 굳이 찾아 볼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실존 인물인 맥도날드 할머니를 다룬 소설 레이디 맥도날드는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이야기였다. 소설을 읽고 찾아본 프로그램 때문인지 나 역시도 그 두 세계가 혼재한 채로 리뷰를 쓰고 있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일하던 외무부 주변을 서성이며 결코 길에서 누워 자는 법 없이 허리를 피고 앉아 자던 그녀, 김연자. 노숙자 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끔찍히도 싫어하고 아무 것도 없는 밑바닥 인생임에도 믿을 수 없을만큼 고고하다. 밥을 먹지 못할 지언정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맥도날드에서 시간을 보낼지언정 수준이 떨어지는 맥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사람들이 주는 후원금도 최소한만 받고 거절한다. 그녀의 동생은 엄마가 언니를 공주 취급했고 자신은 시녀였다며 언니의 존재 자체에 치를 떨고 그녀의 소식조차 듣고 싶지 않아했다. 책을 읽고나서 찾아본 tv 프로그램의 댓글에 누군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라며 그녀의 삶의 태도를 비난했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아끼면서 살았으면 길에 내몰일 일은 없었을 거라며. 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타인은 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있다. 소공녀의 주인공이 집을 포기하고 텐트를 치며 밖에 내몰려도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할 수 없는 것 처럼 레이디 맥도날드가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우아한 삶이다. 세상에서 깨끗한 것이 최고의 가치인냥 청소에 집착하던 나의 할머니는 삶의 끝자락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노인용 기저귀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기저귀를 사온 다음 날이었다. 깔끔함 빼면 시체였던 나의 할머니에게 기저귀를 사용한다는 것은 삶을 좌지우지 할 만큼의 중대사였던 것이다. 레이디 맥도날드는 남들에게 폐끼치지 않고 우아함을 유지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그녀 삶의 이유였을 것이다. 한끼에 20만원을 넘는 프랑스 코스요리를 촬영의 대가로 요구하는 그녀는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어이 없다. 5000원짜리 밥 50끼가 아닌 25만원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한끼를 먹겠다는 그녀의 고집이 나는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소설의 첫 시작부터 나를 울린 그의 죽음을 비참하다고도 당연하다고도 받아 들이고 싶진 않다. 노트의 메모처럼 운을 쌓지 못해 실패한 인생이라고도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녀의 삶이 대단했다고 평가할 마음도 없다. 그저 삶의 밑바닥까지 내팽겨쳐 졌음에도 자신을 지키며 생을 유지하려고 한 레이디의 삶에 조의를 표하고 싶을 뿐이다.
<앨리스와 리코더>의 초고에서 침대 밑에 사는 노숙자는 원래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억척스럽고 부끄러움을 잘 모르고 뻔뻔한. 극이 진행될 수록 고정관념으로 빚어진 캐릭터가 도저히 생명을 갖지 않아 어린 여성으로 바꾸게 되었는데 잘한 선택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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