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를 만났다. 사람이란 기라는 것이 있어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편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불편하다. 평판이 좋고 괜찮은 사람도 나와 맞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어릴때 만나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가 요즘에야 다시 만나는 친구지만, 이 친구를 만나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누구의 영혼이 맑아지게 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동안 나는 무엇이 정의로운가를 따지는 삶을 오랫동안 살았다. 그래서 틀린 것은 지적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많은 피해를 당하기도 했고 비난도 받았다. 그동안 그런 피해와 비난은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오면서 지켜왔던 생각과 소신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요즘들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글을 쓰면서 사회에 참여하는 활동이 과연 내가 앞으로 계속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의문을 해보고 있다. 아마도 평생을 해왔던 일들을 한꺼번에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살아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제 @jamislee 님의 박남준 시인에 대한 글을 보고 이리저리 찾아 보았다.
지리산 매봉리에 혼자 살고 있다. 한달 30만원으로 살면서 15만원은 먹고 사는데 쓰고 15만원은 기부를 한다. 통장에는 200만원 정도의 관값이 남아 있고 수입이 들어오면 모두 기부한다고 한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청정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평생을 그렇게 살기는 어렵지만 어느 한철은 그렇게 살고싶다. 아마도 그런 삶이야 말로 온전하게 내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조만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지리산 그것도 악양을 한번 다녀와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악양에 간적이 있었다. 평산리 입구에 있는 산성 답사를 갔다. 그 산성은 가야시대 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섬진강 왼쪽에서 오른편의 백제와 경계를 이루면서 감시를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나중에는 아마도 왜구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박경리 선생은 토지를 쓰기위해 취재를 하면서 악양을 둘러보았는데 정작 평사리는 먼거리에서만 보고 직접 가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나도 평사리 입구까지만 가보고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의 기와등 같은 기와집이 만들어져 있었다.
한때 박경리의 토지는 낙양의 지가를 올릴 정도였다. 요즘 토지를 읽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때 그 대단한 위세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진다. 며칠전 안성에 갔다가 조병화 문학관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조병화 시인도 일세를 풍미했다. 그러나 요즘 조병화를 읽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망각의 시간을 통과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 명성과 명예에 집착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스스로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10대 중반에도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청년 장년의 시간은 바쁘게 지나다 보니 삶의 의미 같은 것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지난 것은.
요즘은 여유가 있다. 시간은 바쁘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러니 요즘은 다시 삶의 의미와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온전히 내자신만을 위한 삶이야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얼마기간 동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악양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