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사) 한국의 분단 1945-1948, post # 48

in koreanwarhistory •  5 years ago  (edited)

웨더스비 교수 씀

이번 포스트는 유엔임시한국위원회가 남한에서의 선거를 실시하게 되는 마지막 과정과 소련이 북한에 정부를 수리하는 과정을 정리했다. 이와함께 북한이 남한이 단독선거를 차단하기 위해 남북연석회의를 제의하는 과정을 언급했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의 대격변으로 부터 나타났을때, 그들은 곧바로 독립을 해야하는 영토에서 정부를 조직해야하는 임무에 봉착했다. 이러한 세 지역에서,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해결방책으로 고려했던 분단을 수행해야 했다. 인도, 팔레스타인 그리고 한국은 비극적으로 분단되었으며, 지속적인 충돌과 비통한 고통을 초래했다. 게다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북한이 모두 핵무기를 확보했기 때문에, 남한은 미국의 핵무기에 의해 보호를 받아 왔으며, 이런 지역적 충돌은 지구적 참화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미국과 소련이 임시로 나뉘어진 38도선에서 서로를 마주 대면했을때, 점령국들은 이렇게 확대된 악영향의 위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렇게, 1948년 봄, 미국 대표부는 유엔이 감독하는 선거를 준비했을 때, 온건하고 좌파적인 정당들이 선거를 보이코트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만일 서울의 새로운 정부가 완전하게 우파라고하면, 국제사회는 이를 정통성이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선거는 한반도에서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실패할 것이고, 대신에 소련이 남한을 장악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줄 수도 있었다.
유엔 임시한국위원회(UNTCOK)의 회원들은 선거에 대한 보이코트를 우려했으며, 동시에 우파 단체가 자신들이 선호하는 결과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걱정했다. 이런 우려에 대한 열띤 토의 이후에, 그들은 비록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가 반대했지만, 시리아 대표가 제시한 중재안에 합의했다. UNTCOK는 5월 9일 남한에서의 선거를 감시할 수 있었으나, 단지 선택의 자유에 대한 충분한 여건이 있을 경우에 한했다. 이런 결정은 새로운 정부가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면, 유엔은 이를 지키기 위한 도덕적 의무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2년후에 북한이 군사적으로 나라를 통일하려고 했을 때 유엔의 개입을 위한 근거가 되었다.

UNTCOK의 결정 이전에도, 미국의 군정정부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남한의 한국인에게 민주적 과정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라디오 방송, 수업시간, 팜플렛, 전단, 확성기 그리고 기차의 광고를 이용했다. 이런 갬페인은 성공적이었으며, 4월 14일까지 가독능력이 있는 유권자의 90%가 넘는 사람들이 등록을 했다.

북한에 있는 소련대표부는 자연히 이런 미국의 노력에 경고를 받았으며, 이는 서울의 비 공산주의 정부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하게 수립되면 남한에 대한 통제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북한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통치기구를 합법적인 정부로 현실화시키고자 했다. 3월 17일 소련의 코로트코프 사령관은 하지 장군에게 자신은 더 이상 미국과 북한 인민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을 것임을 통보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제 미국은 김일성과 그의 관리들과 직접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코로트코프는 평양정부는 미국이 요금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점령한 지역에 전기공급을 차단한다는 김일성의 편지를 미군정청에 전달했다.

일주일 이후 북한의 초기 정부는 보다 직접적인 행동을 취했다. 4월 14일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전국적인 선거를 실시하고 외국군대의 철수를 보장하는 문제를 토의하자고, 김구와 김규식을 포함한 13명의 남한 지도자들을 초대했다. 김규식은 이 회담 뒤에 의도를 의심스러워했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에 자신은 연석회의가 독재, 산업국유화를 옹호하지 않으며, 자유선거를 논의한다는 조건하에 참가하겠다고 통보했다. 북한 지도자들이 이런 조건에 동의하고, 김규식과 김구는 평양으로 갔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일주일간의 남북연석회의와 그 결과를 알아보겠다.

[참고자료]
James I. Matray, The Reluctant Crusade: American Foreign Policy in Korea, 1941-1950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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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을 배우고가네요

정말 치욕적이고 가슴아픈 시대였습니다.
국력이 강해야 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매번 근대사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