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담수첩] 영화 터널을 보면서. 현실 속 피자와 영화 속 계란후라이 사이, 그 감정의 간극을 좁히지 못 할 거 라는 거 그것이 비극이다.

in kr •  6 years ago  (edited)


비극을 만드는 자들. 그 주연들을 극에서 내려야 하는데, 끌어내려야 할 주연들이 빨간 커튼콜을 바라고 있다. 비극의 커튼을 다시 열려고도 하지 않는 자들, 그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자신의 가족들이 극에 오르면 어떠할까.

세월과 단원은 같을 수 없다. 그 소외된 그들이 나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천안과 세월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 있다. 그것이 다른 이유를 나는 모른다. 그렇기에 잊을 수 없다, 그 참사들의 이유가 명명백백히 밝혀진 것이 없으므로.

비극을 만드는 자들은 그것을 이용하면서 극을 덧 씌운다.
비극에 비극을 덮는다하고 할까.
그래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아니, 그 걸 속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것이 혼란스럽다.

다름은 좋은 것인데, 이런 다름은 틀림으로 다가오는 것이 혼란스럽다.

wrong과 different
영어로 하면 철자도 달라서 틀릴 수 도 없는 그 말들을

다름을 틀렸다고 당연하게 말한다.
우리는 매 번 맞춤법을 틀리게 말한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한다.

서로 생각이 틀렸다고 여기는 것이라 이렇게 온 것일까.
각자 서로의 말이 옳다고 여기며 서로 바라보는 상대는 틀렸다고바라보는 그 자세.

통일이 되면 다시 삼국의 시대가 올까 겁이 난다.

살아오며 기억나는 몇 사건들을 떠올리며 써내려갔는데, 지워버렸다.
누군가에게는 아픔일 수 있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일 수도 있으니.

그래서 바뀐 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때 모두 어릴 때였는데.

5년 전 그날 뉴스를 매일 같이 보던, 나도 지긋지긋해졌다.
5년 전 오늘을 말하는데 바뀐 것이 없어서.
더 한 비극을 만드는 자들이 나타나서.
그것이 내 주위에도 있어서.

5년 전 그날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내 주위에 없을 법 한 일이 일어났었다.
채널이 몇 없어서 그랬었나.
기자가 쓰레기로 불릴 일도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니,
울타리가 여럿이 쳐지며 왜곡된 소문이 담을 넘었다.
인구도 늘어나며, 채널도 늘어갔다.

그러면서,
내 주위에 없을 법 했을 인간들이 나타나더라.

그것이 나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겨울만치 수사가 안 된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지겹도록 수사도 아직 못 했다.

영화는 너무 슬프게만 끌고 가지 않았다.
그것이 좋았다.

눈물과 콧물을 들이키다 정석용 배우의 계란후라이씬을 보고서 씩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방공무원 국가직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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