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생 여기저기에 하방저지선을 구축하려 합니다. 그러니까 불행을 함께 슬퍼해 주고 하소연을 들어줄 위로의 천사들 말입니다. 그들은 슬픔에 빠지고 우울 속으로 침잠해 들기 시작한 내게 여지없이 말을 걸어옵니다. 어떻게 알고는 동병상련을 나누고 마음을 받아 줍니다. 고마운 이들입니다.
그러나 하방저지선에 강점을 가진 이들은 기쁨을 함께 나누는 데는 서툰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그들은 어디로 간지 없고, 새로 나타나는 이들은 도전을 격려하고 함께 유리천장을 부숴줄 용기 있는 탐험가들입니다.
이 두 부류는 잘 섞이지 않고 때로 서로를 경계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들과 관계하고 있는지를 보면 이 사람이 지금 우울에 침잠해 가고 있는지 도전 모드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슬픔과 기쁨을 함께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유리천장과 하방저지선은 꽤나 간격이 넓어서 동류의 사람들이 동시에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유유상종이라고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에 따라 만나는 사람, 공유하는 사람이 달라지는 겁니다.
하방저지선은 꽤나 달콤합니다. 인생은 우울에 우울을 더하고 있지만, 우울이 아니면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우울을 확인하며 동병상련하는 맛이, 쓰디쓴 소주의 목 넘김처럼 달콤쌉싸름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퇴근 후 술 한잔 어때?' 라는 말처럼 일상적이고 중독적입니다. 그런 이들로 인생의 장벽을 치면 인생은 우울의 우물을 계속 파고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 가는 거죠.
유리천장은 뻔히 위가 보여도 도대체 부수고 올라설 용기가 안 나서 유리천장입니다. 그러니 할 수 있다고 함께 해보자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손에는 무엇이라도 깨부술 수 있는 전사의 망치가 들려 있으니까요. 그런 이들은 우울을 달래주고 슬픔을 위로하는 일에는 맹탕입니다. 해본 적이 별로 없고 그 감정이 뭔지 잘 알지 못하니까요. 그들은 달리느라 침잠할 시간이 없고, 유리천장을 깨부술 방법을 고민하느라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둘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위로를 구하려 한다면 뭐가 돌아오겠습니까?
인생에는 저점도 있고 고점도 있는데 하방저지선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얼마나 하방을 저지해 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바닥을 치고 반전을 이루려면 하방저지선 따위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리천장은 계속 머리 위를 막고 있고, 그것은 용기를 내지 않으면 산산조각이 날 유리인지, 무엇으로도 부서지지 않는 방탄유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혼자서 안되면 둘, 셋이라도 함께 두드리다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부수듯 균열이 생기는 날이 오기는 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위를 바라보고 두드리고 두드리느라 하방을 내려다볼 새가 없고, 그러니 하방저지선에 사는 천사들의 달콤한 위로는 간데없이 땀범벅이 된 동지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귓가에 맴도는 겁니다. 그대는 요즘, 무슨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고꾸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날아오르던지, 저지선에 매달려 달콤쌉싸름한 우울의 우물 속으로 침잠할지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하방저지선의 천사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사라져 간다는 걸, 그리고 혼자만 남게 되는 게 하방의 법칙이라는 걸. 그러나 유리천장으로 날아오르는 길에는 어디선가 희한하게 망치를 든 전사들이 나타난다는 걸, 그리고 혼자 헤딩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게 전사들의 법칙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알게 되면 다행입니다. 이제 바닥을 칠 때가 된 겁니다.
마법사로서는 인생의 하방저지선이라는 것, 가져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바닥으로 내리꽂혔고 반동으로 튀어 오르기만을 반복할 뿐. 그러니 하방저지선을 곁에 둔 사람들과 어울릴 일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사의 망치는 종류별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리천장의 종류도 얼마나 다양한지.
무엇이 옳다 그르다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 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그 누구와 어떤 삶을 나누고 있는지. 그것으로 내 삶의 모드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사들은 하방에 살지 않는다는 것, 천사들은 망치를 다룰 줄 모른다는 것도.
물론 하방저지선도 유리천장도 결국 뚫린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