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향
이튿날 프랑스 북부 소도시 릴을 찾아간 건 거기서 활동하는 젊은 여성 사진작가 최승희 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토요일에 유네스코 한국 직원을 만난 자리에 동석했는데, 나는 그의 명석하기도 총기 넘치는 에너지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 파리 북역에서 TGV 고속열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그를 만났다. 최승희 씨는 한국에서 사진을 전공했지만 홍대, 중대 등 소위 예술계의 학맥 라인이 아니면 국내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차가운 현실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무작정 프랑스로 오게 된 게 8년 전이다. “살기는 힘들었지만 마음은 정말 편했어요.”
처음 여기 왔을 때 프랑스 남부의 엑상프로방스에 정착했다.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가겠다는 생각에 찾은 도시였다. 그러나 북부의 소도시로 근거지를 옮기게 된 건 작은 계기 때문이었다.
“여기 온 초창기에 지도 교수가 릴에서 전시를 한다기에 제가 공부하던 엑상프로방스에서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죠. 그때 파티 자리에 갔는데 100명 정도 되는 손님들이 와 있었는데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게다가 교수님도 급한 사정이 생겨 그 자리에 못 오게 된 거죠. 저는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이 된 기분으로 구석에 앉아 있었죠. 사람들이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길래 더 외로워졌죠.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이 저를 둘러싸고는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제게 숙소를 제공하기로 한 교수님이 못 오게 된 걸 안 그분들은 서로 자신의 집을 숙소로 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아, 내가 있어야 할 것은 바로 이 동네다!”
자신과 기운이 맞는 동네와 인연을 맺은 덕분인지 최승희 씨의 릴 생활은 행운의 연속이었다. 시 정부가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옛 기관차 정비 공장을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변모시킨 ‘BAZAAR’라는 작업실을 싼값에 임대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시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사업에 ‘못 먹어도 Go’의 기분으로 지원서를 냈다가 덜컥 합격했다. 릴 시의 다양한 로컬 제품을 직접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한국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배송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인큐베이팅하는 것이다. 시 정부는 창업과 관련한 다양한 교육,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내게 여행을 통해 빨리 현지에 적응하는 방법에 대한 몇 가지 팁을 주었는데 그걸 굳이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맨땅에 헤딩’ 방식이다.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보다 어눌한 말투로 손짓발짓을 하면 오히려 친절하게 잘해준다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사정이 딱해 보이면 그냥 막 도와주려고 해요.” 어느 여행지에 가든 그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보다 고즈넉한 소도시를 찾았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맛집보다 그 동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로컬 식당을 찾았다. 그렇게 표면이 아닌 이면의 진짜 삶 속으로 용감하게 직진하는 것이 그의 여행 방식이었다. 그래서 낯선 곳에 빨리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탈리아 친구 루카의 말이 떠올랐다. “내겐 고향이 없어요. 사람들이 내 고향이죠.”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정작 생물학적 고향에서는 이방인 같은 기분으로 살아야 했던 최승희 씨는, 여기, 프랑스의 작은 도시가 고향이 된 셈이다. 그저 사람들 때문에.
하여 나도 파리에서의 열흘을 갈무리하고 또 어떤 길 위의 고향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에 부풀어 다시 짐을 꾸린다. 이곳 파리에 버리고 갈 것들은 버리고.
_ written by 영화평론가 최광희 / @twentycentury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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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님의 소울컨츄리, 이 글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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