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입학식. 캠퍼스에 깔깔거리는 귀요미들이 늘어나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나날이다. 자, 이제 착석했으니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강의 준비를 해야겠다. 나는 1년동안 5수업을 강의하는데 주로 문화인류학개론과 국제교양기초론 (주로 난민관련 내용)이라는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문화인류학 수업은 매주 지구상의 의식주, 통과의례와 죽음, 가족과 젠더, 종교와 과학, 국가와 민족, 동물과 환경 등등 다양한 주제로 수업을 진행해서 나 스스로도 즐겁게 임하는 수업이다.
문화인류학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한 문화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딘가에서는 주술사가 마을사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원인을 제공한 정령을 불러내고 의식을 행한다. 그리고 이 두 개가 사실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절대적으로 우월한 문화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문화인류학이다. 보통은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문화권에서, 현지에 사는 사람들과 1년이상 함께 생활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민족지(ethnography)에 기술한다. 물론 이 학문은 제국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에 주로 '서양'문화권의 국가가 '비서양'국가에서 조사를 해왔다는 권력관계, 문화를 이해하고 기술할 권리가 과연 누구한테 있는 것인가 등등. 문화인류학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스로 비판하며 자기성찰하는 학문으로, 그 시대의 가치관에 따라 항상 변화하고 만들어지는 학문이기도 하다.
나는 문화인류학이 어떤 학문인지 학생들에게 설명할때 종종 이야기한다. 만약에 자신이 다른 시대, 혹은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어떤 우주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지, 어떤 젠더의식을 가지며 어떤 가족을 형성할지, 언제부터 생명이고 죽음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를 조금이라도 상상해보는 학문이라고. 그 과정에서 인류학자들이 인류학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현지 사람들의 "지혜"라고. 그래서 매번 스스로의 가치관이 전복되고, 참 즐거운 학문이라고.
지금, 문화인류학은 모두가 오지의 마을에 들어가 조사를 하지 않는다.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곳으로 건너가, 현지의 말을 배우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하는 것이 전통적인 연구방법이기 때문에 여전히 그런 이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일본 로봇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사람, 동물인권단체에서 연구하는 사람, 병원에서의 장기이식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 프랑스의 지역화폐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 등등 정말 다양한 주제가 넘쳐난다. 연구되지 않는 주제가 없을정도로 다양한 문화인류학은, 그래서 질리지 않고, 재미지다. 이 즐거움을 올해도 많은 학생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며, 녹음을 해야겠다. 에헴.
문화인류학이라는 단어를 보니, 기억 저 편에 묻혀있던 "마빈 해리스"라는 이름이 갑자기 떠오르는데, 어떤 책의 저자였던 것 같은데 책 내용은 기억이 안나니 아마도 논술 앞두고 주입식 교육 받은 폐해인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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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도 마빈 해리스는 오래된 개론서에서 보고 기억 저편에 묻어둔 이름이네요, 오랜만에 듣고 반갑네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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